Page 90 - 선림고경총서 - 05 - 참선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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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참선경어
람은 설사 선지식을 만났다 하더라도 한순간에 잘못을 뉘우치려
하지 않으니 천불이 출세(出世)해도 어찌할 수 없다.
3.망념으로 망념을 다스리려는 장애
참선할 때 의정이 일어나지 않으면 알음알이[情識妄想心]를 가
지고 망심을 억눌러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이들이 있다.이렇게
망심이 일어나지 않는 경지에 이르게 되면,맑고 고요하여 마음에
티끌 한 점 없기는 하다.그러나 그들은 식심(識心)의 근원은 끝내
깨뜨리지 못하고서 맑고 고요하여 티끌 한 점 없는 그 경계에서야
말로 공부가 되는 것이라 이해한다.그러다가 남에게 자기의 아픈
곳을 지적당하면,마치 물위에 뜬 호롱박을 자꾸만 눌러대는 꼴이
되니 이는 생멸심이지 선은 아니다.이러한 병통은 애초부터 화두
를 참구할 적에 의정을 일으키려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설사
심신을 눌러서 일어나지 못하게 했더라도 마치 돌로 풀을 눌러놓
은 것과 같으며,만일 알음알이를 끊어 단멸(斷滅)을 이루었다 하
더라도 이는 바로 단견외도[空無外道]에 떨어진 것이다.그러나 단
멸(斷滅)상태를 떨쳐 버리지 못한다면,바깥 인연을 만났을 때 다
시 식심(識心)을 끌어 일으켜 ‘맑고 티없는 경지’정도로 성(聖)스
럽다는 생각을 내며 스스로 확철대오하는 방편을 얻었다고 여긴
다.이런 이를 풀어놓으면 미치광이가 되고 붙들어 두면 마(魔)가
되며,세상에 나가 무지한 인간들을 속일 것이다.그리하여 깊은
재앙을 일으키고 사람들의 신심을 퇴보시키며 깨달음에 나아가는
길을 막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