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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나을 게 없으니 그대는 힘써서 후학을 바로잡아야 하
리라.” 남화석각(南華石刻)
4.
스승(오조 법연스님)께서는 근검 절약하여 발우(鉢盂)주머니와
신주머니 하나를 백번 천번이나 꿰맸는데도 차마 버리지 못하셨
다.한번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두 물건이 같이 관문(關門)을 드나든 지가 겨우 50여 년밖
에 안 되었다.어떻게 도중에 버리겠는가.”
천남(泉南)에 오상좌(悟上座)라는 이가 갈포(褐布)로 만든 좋은
옷을 보내면서 “이것은 바다 건너에서 나는 물건으로,겨울에 입
으면 따뜻하고 여름에 입으면 시원합니다”라고 말하였다.스승[先
師]께서는 “내게는 추위에는 땔감과 종이 이불이 있고 무더위에는
솔바람이 있다.이를 쌓아 두어 어디에 쓰겠는가”하고는 끝내 물
리치셨다. 일록(日錄)
5.
스승께서는 진정 극문(眞淨克文:1025~1102)스님이 입적했다
는 소문을 듣고 신위(神位)를 모시고 공양을 준비했다.그리고는
예법에 지나칠 정도로 슬피 통곡하더니 이렇게 탄식하셨다.
“참으로 드문 인재였다.도의 뿌리만을 볼 뿐 지엽은 찾지 않
았으니,애석하다,이런 사람이 일찍 죽다니!그의 도를 계승할 만
한 자가 있다는 소문을 듣질 못했으니 강서(江西)의 총림이 이제
부터 쓸쓸해지겠구나.” 일록(日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