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54 - 선림고경총서 - 06 - 선림보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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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 선림보훈 하



            않았다.여산(廬山)원통(圓通)스님의 청을 받고 부임하던 날도 주
            장자와 짚신뿐이었으나 스님의 씩씩한 기색을 보는 자들은 속으

            로 알아보았다.
               구강군수(九江郡守)임숙달(林叔達)은 스님을 가리켜 불법의 대

            들보이며 나루터라고 평하였다.
               그 일로 사방에 이름이 알려졌으나 벼슬에 나아가느냐 들어앉
            느냐의 문제에 있어서는 실로 옛 스님들의 체통과 품격을 체득하

            였던 것이다.그리하여 그가 죽던 날엔 천한 심부름꾼까지도 눈물
            을 흘렸다.



                 8.
               시랑인 장효상(張孝祥)은 풍교(楓橋)*의 연장로(演長老)*에게 편
                                                77)
                                                                 7 8)
            지를 드려 말하였다.
               “옛날의 모든 조사들은 주지 맡는 일이 없었습니다.문호를 개
            방하고 제자들을 받아들였던 것은 마지못해서였습니다.그러다가
            상법(像法)마저 쇠퇴한 시기에는 실제로 땅을 떼어 주거나 관직

            임명장으로 절을 매매한다는 말이 있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지
            난날 풍교사(楓橋寺)가 어지러웠던 경우도 모두가 이러한 물건들
            때문이었습니다.

               스님의 관직에 대한 처신은 사람들이 모두 아는 바와 같이 병
            아리가 알을 깨고 나올 때,새끼와 어미가 안팎으로 동시에 쪼아


            *풍교:소주의 한산사(寒山寺)앞에 있음.
            *연장로:상주 화장(華藏)의 둔암 종연(遯庵宗演)스님.대혜스님의 법을 이었으
              며,남악의 16세 법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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