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3 - 선림고경총서 - 06 - 선림보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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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 유청스님 93
날이 밝아서야 대중들은 그가 이미 떠나 버렸다는 것을 알았으며,
쫓아간 사람은 상주(常州)에 이르러서야 그를 뵙고 유익한 법문을
듣고 되돌아왔다 한다.
이 노덕(老德)의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았더니 고소(姑蘇)의
승․속 모두에게 신심을 일으키고 도의 종자를 더욱 깊게 심어
주었다.스님은 사람을 받아들여 교화하는 방편을 자유롭게 운용
했다 할 만하니,법의 지위를 훔쳐 재물에 구애받으며 자기 한 몸
만을 도모하는 자와는 천지차이라 하겠다.
여덕화상서(與德和尙書)
15.
문정공(文正公:희문)이 낭야스님에게 말하였다.
“작년에 여기에 와서 법담을 나눌 만한 스님을 찾아보았습니
다.그리하여 한 관리에게 곳곳에 좋은 스님이 계시는가를 물어보
았더니,그는 북사(北寺)인 서광사(瑞光寺)에 계신 희(希)․무(茂)
두 스님이 훌륭하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나는 이밖에 다른 선원
과 율원에는 별다른 분이 없는지를 다시 물었더니,그 관리는 나
에게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유가(儒家)에서는 선비다운 행을 존중하고,불가(佛家)에서는
덕업(德業)을 논합니다.그런데 희(希)․무(茂)두 스님은 30년 동
안 문지방을 넘지 아니하고 흰 베옷만 걸치며 명성과 재물에는
결코 걸림이 없었습니다.그러므로 그 지방 사람들이 그의 지조와
실천을 높이 사서 스승으로 받듭니다.법좌(法座)에 올라 설법을
하며 부처님을 대신해 교화를 드날리는 경우에는 근기에 따라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