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2 - 선림고경총서 - 06 - 선림보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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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무리라고 낙인찍힌다는 것이다.
대체로 속마음을 털어놓느냐,자기 이목에 맡기느냐가 다르기
때문에 선악과 성패가 이렇게 상반되는 것이다.이는 허물을 고쳐
가는 사정이 다르고 사람을 쓰는 방법이 같지 않아서 그렇지 않
겠는가.
14.
요즈음 큰스님이라 하는 이들 중에 두 가지 경계에 끄달려서
지식(智識)이 분명치 못하며,두 가지 잘못된 풍조에 빠져 법다운
체모를 잃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첫째는 마음에 거슬리는 경
계를 마주하면 오그라드는 태도에 빠지는 경우이며,둘째는 마음
에 드는 경계를 받아들여 편리함만을 찾는 풍조에 빠지게 되는
경우이다.
이러한 두 가지 풍조에 빠지고 나면 마음속에는 희로(喜怒)의
감정이 엇갈리고 우울하고 발끈하는 기색이 얼굴에 드러나니,이
는 불교 문중에 먹칠하고 지성인들의 비웃음과 꾸지람을 사게 되
는 소치이다.지혜로운 사람이라야만 훌륭하게 받아들여 교화하는
방편을 자유롭게 쓰면서 후학을 잘 인도할 수 있다.
가령 낭야 광조(瑯王耶廣照)스님 같은 경우,소주(蘇州)에 가서 범
희문(范希文)과 만났을 때,거기에서 신도들이 바친 시주물과 돈
천여 꿰미를 받고는 가만히 사람을 보내 성에 있는 모든 사찰의
대중 숫자를 계산해 보고 모두에게 남 모르게 돈을 보냈다.마침
그 날은 여러 사람이 모일 단(檀)을 만들어 재(齋)를 베푸는 날이
었는데,이른 새벽에 희문에게 미리 인사하고 배로 떠나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