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4 - 선림고경총서 - 14 - 조동록
P. 64
64 조동록
34.
위독한 스님 하나가 스님을 뵈려 하기에 스님께서 그에게 갔다.
“스님이시여,무엇 때문에 중생을 구제하지 않습니까?”
“ 그대는 어떤 중생이더냐?”
“ 저는 대천제(大闡提)중생입니다.”
스님께서 잠자코 계시자 그가 말하였다.
“사방에서 산이 밀어닥칠 땐 어찌합니까?”
“ 나는 일전에 어떤 집 처마 밑을 지나왔다.”
“ 갔다 돌아왔습니까,갔다 오지 않았습니까?”
“ 갔다 오지 않았다.”
“ 저더러는 어느 곳으로 가라 하시렵니까?”
“ 좁쌀 삼태기 속으로 가라.”
그 스님이 “허(噓)”하고 소리를 한 번 내더니 “안녕히 계십
시오”하고는 앉은 채로 입적[坐脫]하자 스님은 주장자로 머리
를 세 번 치면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그렇게 갈 줄만 알았을 뿐 이렇게 올 줄은 몰랐구나.”
소각 근(昭覺勤)스님은 말하였다.
“행각하는 납자라면 누구나 이 한 건의 일을 투철히 해결하려
해야 한다.이 중은 이미 대천제 중생으로서 사방에서 산이 밀어
닥칠 때서야 바쁘게 손발을 허둥댔다.동산스님이 큰 자비를 가
지고 그에게 한 가닥 길을 평평하게 터주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이처럼 갈 줄 알았으랴.그러므로 옛사람은 말하기를,‘임종할 즈
음에 털끝만큼이라도 성인이다 범부다 하는 알음알이가 다하지
않는다면 노새나 말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면치 못한다’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