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3 - 선림고경총서 - 16 - 운문록(하)
P. 163
운문록 下 163
스님이 다음날 산에 오르자 설봉스님은 보자마자 말씀하셨다.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가?”
그러자 스님은 머리를 숙였고 여기서 깨쳤다.
3.
스님이 설봉에 있을 때 어떤 스님이 설봉스님에게 물었다.
“‘눈에 보이는 대로 말할 줄 모른다면 걸음을 뗀들 어떻게 길
을 알겠느냐’하였으니 무슨 뜻입니까?”
설봉스님이 “아이고,아이고”하였으나 그 스님은 알아듣지 못
하고 스님에게 물었다.
“‘아이고’한 뜻이 무엇입니까?”
“ 삼[麻]서 근,베[布]한 필이다.”
“ 모르겠습니다.”
“ 다시 석 자[尺]죽장(竹杖)이나 들어라.”
그 후 설봉스님은 이 소문을 듣더니 기뻐하며 말씀하셨다.
“내 항상 이 납자를 의심했더니…….”
4.
스님이 행각할 때 강사[座主]하나를 만났는데 그는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천태산 국청사(國淸寺)에서 공양 시간에 설봉스님은 발우를 들
고 ‘말을 한다면 너에게 발우를 주겠다’하기에 나는 ‘이것은 화신
불[化佛]이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설봉스님
이 ‘너는 강사의 종[奴]도 못 되겠구나’하시기에 저는 ‘모르겠습
니다’하였습니다.설봉스님이 ‘네가 나에게 묻거라.내 말해 주리
라’하시기에 제가 비로소 절하였더니,설봉스님은 걷어차서 쓰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