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1 - 선림고경총서 - 19 - 설봉록
P. 111

설봉록 下 111


               “대왕이시여!지금 눈앞에 무엇이 보입니까?아상(我相)․인상(人
            相)․중생상(衆生相)․수자상(壽者相)이 있습니까?대왕이시여!경에
            이르기를 ‘항하의 모래알처럼 많은 겁토록 보시한다 하여도 4구게를
            늘 지니느니만 못하며,또한 허공에 가득 찬 공양도 그러하다’라고

            하였습니다.대왕이시여!반드시 망상에서 깨어나야 합니다.그리고
            깨어나 바른 생각[正念]을 홀연히 깨달아 굳게 간직하고 의심하지 않
            으면 무량하고 큰 불과(佛果)의 직접적인 원인[正因]을 많이 쌓게 됩
            니다.이것이 밝고 묘한 진심이며 큰 원각(圓覺)의 청정한 마음으로
            빨리 성불의 길로 가게 하는 것입니다.
               대왕이시여!이 산승은 윗대의 덕산(德山),석두(石頭)스님 때부터

            이 비밀한 법을 전수받았습니다.원컨대 저는 용화회상(龍華會上)에
            들어가 대왕을 만나고자 합니다.지금 이 자리에서 대왕께서는 이미
            가르쳐 준 법을 다 아셨을 것입니다.그러나 가르쳐 준 것도 없고,
            들어가는 것도 없고 나오는 것도 없으며,보는 것[觀]도 보이는 모습

            [相]도 없고,부처도 없고 법도 없으며,길고 짧은 것도 없고 한 색도
            없어서 모두가 나에게 달린 것입니다.그렇게 되면 ‘있다’고 해도 되
            고 ‘없다’고 해도 되는데,있다 함은 묘하게 있음[妙有]이며 없다 함
            은 묘하게 없음[妙無]입니다.이렇게 되면 온종일 말을 해도 온종일
            말하지 않는 것이 되며,서로가 서로를 동시에 부정[遮]하고 동시에
            긍정[照]하니,세우고 허물고 해도 그것이 세우고 허물고 하는 것이

            아니게 되는 것입니다.이렇게 중도(中道)에 선 이 법은 모두에 다
            통하는 것입니다.만약에 이러한 뜻을 알면 모든 것이 다 옳고 또 모
            든 것이 옳지 못하며 말할 수도 말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지견(知
            見)이 공하여 형상이 없어지면 형상 없는 법성이 모든 공(空)을 내어
   106   107   108   109   110   111   112   113   114   115   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