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50 - 선림고경총서 - 19 - 설봉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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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 설봉록


            수 있는 모습이니 누가 헛되게 세월만 보내며 미혹을 달갑게 여겨
            배우기를 버리려 하겠는가.이른바 한 축의 두루마리 책 속에 성품
            의 하늘이 환히 빛난다는 말이 진정 거짓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우리 진각대사는 선심(禪心)이 철저하기 전에는 구름 따

            라 물 따라 행각하는 고달픔을 꺼리지 않으셨다.그리하여 일찍이
            투자산에 세 번 오르고 아홉 번이나 동산에 오르는 고생을 맛보셨다.
            그 뒤 오산진에서 종지를 깨쳐 마음의 눈이 탁 트이고 의심 없는 경
            지를 그대로 얻어 비로소 평생의 뜻을 풀게 되었다.그 후 웅장한 설
            봉산에 걸터앉아 우레 같은 법음을 진동하게 되어서는 완전한 사자
            의 위용을 나타내시고 제호맛 같은 법유(法乳)를 흘려 주셨다.최상

            근기를 맞아 많은 방편으로 이끌어 주심을 보이시고 후학을 빨아들
            여 뒷사람에게까지 도움을 주셨다.말이 없는 경지에서 말씀을 내놓
            았고 들음 없는 경지에서 뚜렷이 듣게 하셨으니 그 노파심은 간절한
            것이었다.이야말로 이른바 “방랑하는 자식 생각에 몹시도 나그네를

            가여워하고 빈 술잔 채우는 일이 버릇이 되었건만,사람을 취하게
            하는 것이 안타깝구나[曾爲浪子偏憐客 慣愛添盃惜醉人]!”하는 것이
            다.
               이렇듯 사람마다 모두가 번뇌를 녹여 깨달음이 청정케 하고,그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근본에 통달하고 망정을 잊게 하였다.그리
            하여 신비한 구슬이 손안에 있는 것이므로 딴 곳에서 찾을 것 없음

            을 홀연히 깨닫도록 하였다.지극한 보물이 품안에 있으면 응당 스
            스로 기뻐할 일이다.그런 까닭에 문자를 통해 나타내지만 이치는
            말 밖으로 벗어난 것이다.
               옛말에 “말할 줄 아는 일은 혓바닥에 달린 것이 아니고 보는 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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