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48 - 선림고경총서 - 19 - 설봉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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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 설봉록
다가 전란에 불타고 좀이 쓸어 훼손되어 만들어지고 허물어진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그러나 다행히도 적임자가 있어 실추된 것을
제창하고 훼손된 것을 보완해 준 덕분에 오늘에 와서 사라졌던 옛
모습을 찾게 되었다.
주지 성암 명(性菴明)스님은 도가 언어문자에 있는 것이 아니지만
언어문자가 아니면 도가 드러날 수 없음을 생각하였다.더욱이 분에
넘치게 무거운 기대를 짊어진 몸으로서 어찌 조사의 도가 영영 느슨
해지고 펴지지 않아서 후학들이 눈이 멀게 되는 꼴을 차마 앉아서
볼 수 있겠는가 하고 개탄하였다.그러한 나머지 사방을 찾고 더듬
어 도산(道山)의 상월루(霜月樓)에서 어록의 유본을 찾아냈다.그것을
베껴 공인에게 인쇄하도록 명하였고 일이 끝날 무렵,이 기록으로
후학을 일깨우고자 나에게 글을 부탁하였다.
생각하니 그가 손님이나 학인을 상대하는 일만 해도 번거롭고 바
쁜 터에 조사의 기연과 말씀들이 흩어질까 근심하여 빠지고 잘못된
부분을 정리 보완하였으니 그 뜻을 높이 살 만하다.그러므로 이 어
록의 개괄적인 내용을 써서 끝에다 붙이는 바이다.
대명(大明)성화(成化)갑진년(1484)11월 16일,
전 복주부(福州府)의 승강(僧綱)이며 사도강(司都綱),
겸하여 고산선사(鼓山禪寺)의 85대 주지인
지명(智明)의 향을 사르고 절하며 기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