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9 - 선림고경총서 - 20 - 현사록
P. 229
현사록 下 229
이때부터 아침저녁 스승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며 바위산 속
에 자취를 숨기고 지냈다.눈서리를 꺼리지 않고 자기 몸을 잊었
으며 세월 가는 것을 아랑곳 않고 일에 힘썼다.어느 때는 옛 골짜
기를 찾아 노닐고 어느 때는 높은 산마루에서 좌선하니,고고하고
신령한 학이 난간을 타고 앉은 듯하였고 한가하고 조용한 구름이
골짜기를 벗어나는 듯하였다.
홍조(弘照)대사는 비밀스럽게 더욱 열심히 가르쳐 주었으며 그
에게는 별도의 품등으로 대우했다.함통 7년(866)에 학형 한 분이
외지에서 돌아와 살게 되었는데 그가 곧 설봉 진각(雪峰眞覺)대사
이시다.두 분의 만남은 빙벽(冰碧)을 보자마자 거기 노니는 운룡
(雲龍)을 만난 듯하였다.스님의 종승(宗乘)에 대한 법문은 누구보
다도 뛰어났으며,덕의 언덕은 3봉(三峰)이 양보할 정도로 높았고
선의 강물은 사해가 부끄러워할 만큼 깊었다.이때부터 설봉스님
은 스님을 ‘비두타(備頭陀)’라고 불렀다.
어느 날 설봉스님이 물었다.
“바로 지금,어느 것이 비두타(備頭陀)인가?”
스님이 답하였다.
“사람들에게 속을 수는 없습니다.”
함통 11년(870)설봉스님이 설봉산에 주지를 맡게 되자 스님은
부용산(芙蓉山)동양동(東洋洞)에 터를 골라 풀과 나무를 잘라내고
원숭이들을 길들여 그곳에 홀로 살며 오직 오묘한 도를 탐구하여
남은 무시습기를 아득히 잊어버렸다.
함통 13년(872)다시 설봉산에 올라가 일심으로 선관(禪關)을
잡아당기기를 희구하고 힘을 모아 함께 조도(鳥道:험한 산길,묘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