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3 - 선림고경총서 - 22 - 나옹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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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명 23
있게 되었다.스님은 “돌아가신 스승 지공스님이 일찍이 이 절을
중수하셨는데,전란에 탔으니 어찌 그 뜻을 이어받지 않으랴”하
고는 대중과 의논하여 전각과 집들을 더 넓혔다.공사를 마치고
병진년(1376)4월에 낙성식을 크게 열었다.
대평(臺評)의 생각에 회암사는 서울과 가깝기 때문에 사람들의
왕래가 밤낮으로 끊이지 않으므로 혹 생업에 폐가 될까 염려되어
왕래를 금하였다.
그리하여 영원사(瑩源寺:경남 밀양에 있음)로 옮기라는 임금의
명령이 있었고,빨리 출발하라는 재촉이 있었다.스님은 마침 병
중에 있었으므로 가마를 타고 절 입구의 남쪽에 있는 못가로 나
갔다가 스스로 가마꾼을 시켜 열반문으로 나왔다.대중이 모두 의
아하게 여겨 소리내어 우니 스님은 대중을 돌아보고 말씀하셨다.
“부디 힘쓰고 힘쓰시오.나 때문에 공부를 중도에 그만두지 마
시오.내 걸음은 여흥(驢興)에 가서 멈출 것이오.”
한강에 이르러 호송관 탁첨(卓詹)에게 말씀하셨다.
“내 병이 심하오.배를 빌려 타고 갑시다.”
그리하여 물길을 따라간 지 7일 만에 여흥에 이르렀다.거기서
또 탁첨에게 말씀하셨다.
“조금 쉬었다가 병세가 좀 나아지면 가고 싶소.”
탁첨은 기꺼이 그 말을 따라 신륵사(神勒寺)에 머물렀다.5월
15일에 탁첨은 또 빨리 가자고 독촉하였다.
스승은 입을 열었다.
“그것은 어렵지 않소.나는 아주 갈 것이오.”
그리고는 그 날 진시(辰時)에 고요히 돌아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