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8 - 선림고경총서 - 22 - 나옹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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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나옹록


            도적은 과연 오지 않았다.
               계묘년(1363)에 구월산(九月山)에 들어갔더니 임금은 내시 김중

            손(金仲孫)을 보내 돌아오기를 청하였다.
               을사년(1365)3월에 대궐에 들어가 물러가기를 청하여 비로소
            숙원(宿願)을 이룬 뒤에는,용문(龍門)․원적(元寂)등 여러 산에서

            노닐다가 병오년(1366)에는 금강산에 들어갔고,정미년(1367)가을
            에는 청평사(淸平寺)에 머물렀다.
               그 해 겨울에는 예보암(猊寶岩)이 지공스님의 가사와 친필을

            스님에게 주면서 치명(治命:죽을 무렵에 맑은 정신으로 하는 유언)
            이라 하였다.
               기유년(1369)에 다시 오대산에 들어갔다.경술년(1370)봄에는

            사도 달예(司徒 達睿)가 지공스님의 영골(靈骨)을 받들고 와서 회
            암사에 두니 스님은 그 영골에 예배하였다.그리고 곧 임금의 부

            름을 받고 나아가 광명사(廣明寺)에서 여름을 지내고 가을에 회암
            사로 돌아왔으니,그것은 9월에 공부선(工夫選)이 있었기 때문이
            다.

               스님이 거처하는 방을 강월헌(江月軒)이라 하였다.평생에 세속
            의 문자를 익히지는 않았으나,제영(題詠)을 청하는 이가 있으면

            붓을 들어 그 자리에서 써 주었는데 혹 마음으로 다듬지 않더라
            도 이치가 심원하였다.
               만년에는 장난 삼아 산수화 그리기를 좋아하여 권도(權道)의

            시달림을 받았으니,아아,도를 통하면 으레 재능도 많아지는가
            보다.
               신 색(穡)은 삼가 절하고 머리를 조아려 비명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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