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7 - 선림고경총서 - 22 - 나옹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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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명 27


               “맑고 텅 비고 고요하여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찬란한 이것
            은 어디서 나왔는가?”

               대중이 대답이 없자 스님은 천천히 말씀하셨다.
               “구중 궁궐의 금구(金口)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가사를 입고 향을 사러 황제를 위해 축원하고 나서

            법좌에 올라 주장자를 가로 잡고 두어 마디 한 뒤에 자리에서 내
            려오셨다.
               무술년(1358)봄에 지공스님에게 수기(授記)를 얻고 귀국해서는

            다니거나 머무르거나 인연 따라 설법하다가,경자년(1360)에는 오
            대산에 들어가 사셨다.
               신축년(1361)겨울에 임금님은 내첨사 방절(內詹事 方節)을 보

            내 서울로 맞아들여 마음의 요체에 대한 법문을 청하고 만수가사
            (滿繡袈裟)와 수정불자(水精拂子)를 내리셨다.공주(公主)는 마노불

            자를 올리고,태후는 친히 보시를 베풀고 신광사(神光寺)에 계시기
            를 청하였으나 사양하자 임금이 “나도 불법에서 물러가겠다”하시
            므로 부득이 부임하셨다.

               11 월에 홍건적(紅巾賊)이 서울 근방[京幾]을 짓밟았으므로 도성
            사람들이 모두 남쪽으로 옮겼다.스님네들이 두려워하여 스님에게

            피난하기를 청하자 스님은,“명(命)이 있으면 살겠거늘 도적인들
            어찌하겠는가”하셨다.그러나 며칠을 두고 더욱 졸라대었다.그
            날 밤 꿈에,얼굴에 검은 글이 씌어진 신인(神人)하나가 의관을

            갖추고 절하며,“대중이 흩어지면 도적은 반드시 이 절을 없앨 것
            이니,스님은 뜻을 굳게 가지십시오”하였다.이튿날 토지신(土地
            神)을 모신 곳에 가서 그 용모를 보았더니 꿈에 본 그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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