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2 - 선림고경총서 - 22 - 나옹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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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나옹록


            세우기로 하였다.*
                            17)
               9 월 23일에 임금이 돌아가셨다.스님은 몸소 빈전(殯殿)에 나아

            가 영혼에게 소참법문*을 하시고 서식을 갖추어 왕사의 인(印)을
                                 18)
            조정에 돌렸다.
               지금 임금께서도 즉위하여 내신 주언방(周彦邦)을 보내 내향(內

            香)을 내리시고 아울러 인보(印寶)를 보내시면서 왕사로 봉하였다.
               병진년(1376)봄에 이르러 공사를 마치고 4월 15일에 크게 낙
            성식을 베풀었다.임금은 구관 유지린(具官 柳之璘)을 보내 행향사

            (行香使)로 삼았으며,서울에서 지방에서 사부대중이 구름과 바퀴
            살처럼 부지기수로 모여들었다.
               마침 대평(臺評)은 생각하기를,‘회암사는 서울과 아주 가까우

            므로 사부대중의 왕래가 밤낮으로 끊이지 않으니 혹 생업에 폐해
            를 주지나 않을까’하였다.그리하여 임금의 명으로 스님을 영원

            사(瑩源寺)로 옮기라 하고 출발을 재촉하였다.스님은 마침 병이
            있어 가마를 타고 절 문을 나왔는데 남쪽에 있는 못가에 이르렀
            다가 스스로 가마꾼을 시켜 다시 열반문으로 나왔다.대중은 모두

            의심하여 목놓아 울부짖었다.스승은 대중을 돌아보고,“부디 힘
            쓰고 힘쓰시오.나 때문에 중단하지 마시오.내 걸음은 여흥(驢興)

            에서 그칠 것이오”하였다.
               5 월 2일에 한강에 이르러 호송관 탁첨(卓詹)에게 말하였다.
               “나는 지금 병이 너무 심해 배를 타고 가고 싶소.”


            *이 절은 가까이는 삼각산(三角山)을 마주하였고,남쪽에는 한강이 있으며 북
              쪽에는 장단(長湍)이 있으니 ‘삼산양수’라는 말을 환히 볼 수 있다.【원문
              주】
            *이것은 어록에 나온다.【원문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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