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9 - 선림고경총서 - 22 - 나옹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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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장 49
즐겼다.
병오년(1366)3월에는 금강산에 들어가 정양암(正陽菴)에 있었
다.정미년(1367)가을에 임금님은 교주도(交州道)안렴사 정양생
(鄭良生)에게 명하여 스님에게 청평사에 머무르시기를 청하였다.
그 해 겨울에 보암(普菴)장로가 지공스님이 맡기신 가사 한 벌
과 편지 한 통을 받아 가지고 절에 와서 스님에게 주었다.스님은
그것을 입고 향을 사른 뒤에 두루 설법하였다.*
15)
기유년(1369)9월에 병으로 물러나 또 오대산에 들어가 영감암
(靈感菴)에 머물렀다.
홍무(洪武)경술년(1370)1월 1일 아침에 사도 달예(司徒 達睿)
가 지공스님의 영골과 사리를 받들고 회암사에 왔다.3월에 스님
은 그 영골에 예배하기 위해 산을 나왔다.임금은 가까운 신하 김
원부(金元富)를 보내 스님을 맞이하고 영골에 예배하였다.예배를
마친 뒤 스님은 성안에 들어가 광명사(廣明寺)에서 여름 안거를
지냈다.
8 월 3일에 내재(內齋)에 나아가 재를 마치고 두루 설법하였다.
17 일에 임금은 가까운 신하 안익상(安益祥)을 보내 길을 도우
라 하고 스님께 회암사에 머무르기를 청하였다.9월에는 공부선
(工夫選)을 마련하고 양종오교(兩宗五敎)의 제방 승려를 크게 모아
그들의 공부를 시험했는데,그때 스님에게 주맹(主盟)이 되기를 청
하였다.
16 일에 선석(選席)을 열었다.임금님은 여러 군(君)과 양부(兩府)
의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친히 나와 보셨다.그리고 선사 강사 등
*이것은 어록에 나온다.【원문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