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8 - 선림고경총서 - 22 - 나옹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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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나옹록
오직 스님만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보통때와 같이 설법하고 있었
다.하루는 수십 기(騎)의 도적들이 절에 들어왔는데,스님은 엄연
히 그들을 상대하였다.도적의 우두머리는 침향(沈香)한 조각을
올리고 물러갔다.그 뒤로도 대중은 두려워하여 스님에게 피난하
기를 권하였다.그러나 스님은 말리면서,“명(命)이 있으면 살 것
인데 도적이 너희들 일에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하였다.
그 뒤에 어느 날 대중이 다시 피난을 청하였으므로 스님은 부
득이 허락하고 그 이튿날로 기약하였었다.그런데 그 날 밤 꿈에
어떤 신인(神人)이 의관을 갖추고 절하며,“대중이 흩어지면 도적
은 반드시 이 절을 없앨 것입니다.스님은 부디 뜻을 굳게 가지십
시오”하고 곧 물러갔다.그 이튿날 스님은 토지신을 모신 곳에
가서 그 모습을 보았더니 바로 꿈에 본 얼굴이었다.스님은 대중
을 시켜 경을 읽어 제사하고는 끝내 떠나지 않았다.도적은 여러
번 왔다 갔으나 재물이나 양식,또는 사람들을 노략질하지 않았
다.
계묘년(1363)7월에 재삼 글을 올려 주지직을 사퇴하려 했으나,
임금이 허락하지 않으므로 스님은 스스로 빠져나와 구월산(九月
山)금강암으로 갔다.임금은 내시 김중손(金仲孫)을 보내 특별히
내향(內香)을 내리시고,또 서해도(西海道)지휘사 박희(朴曦),안렴
사 이보만(按兼使 李寶萬),해주목사 김계생(海州牧使 金繼生)등
에게 칙명을 내려 스님이 주지직에 돌아오기를 강요하였다.스님
은 부득이 10월에 신광사로 돌아와 2년 동안 머무르시다가,을사
년(1365)3월에 궁중에 들어가 글을 올려 물러났다.그리고는 용문
(龍門)․원적(圓寂)등 여러 산에 노닐면서 인연을 따라 마음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