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3 - 선림고경총서 - 22 - 나옹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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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록 63
“산승은 오대산(五臺山)을 떠나기 전에 이미 여러분을 위해 오
늘의 일을 다 설파하였다.지금 손과 주인이 서로 만나 앉고 섬이
엄연하니 이미 많은 일을 이루었는데,다시 산승에게 모래흙을 흩
뿌리기를 기대하는 것은 만리에 흰구름 격이다.비록 그렇다 하나
관법(官法)으로는 바늘도 용납하지 않지만 사사로이는 거마(車馬)
도 통하는 것이니 내 말을 알아듣는 이가 있느냐?”
문답을 마치고는 이어서 말씀하셨다.
“티끌 같은 세계에 털끝 하나 없고 날마다 당당하여 살 궁리를
편다.볼라치면 볼 수 없어 캄캄하더니,쓸 때는 무궁무진 분명하
도다.3세의 부처들도 그 바람 아래 섰고 역대의 조사들도 3천 리
를 물러선다.말해 보라.이것이 무엇인데 그렇게도 대단한가.확
실히 알겠는가.확실히 알기만 한다면 어디로 가나 이름과 형상을
떠나 삿됨을 무찌르고 바름을 드러낼 것이며,가로 잡거나 거꾸로
쓰거나 죽이고 살림이 자재로울 것이다.한 줄기 풀로 장육금신을
만들며 장육금신으로 한 줄기 풀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는 얼른 주장자를 들어 왼쪽으로 한 번 내리치고는,“이
것이 한 줄기 풀이라면 어느 것이 장육금신인가?”하시고 오른쪽
으로 한 번 내리치고는 말씀하셨다.
“이것이 장육금신이라면 어느 것이 한 줄기 풀인가?만일 여기
서 깨치면 임금의 은혜와 부처의 은혜를 한꺼번에 갚을 수 있겠
지만 그렇지 못하거든 각기 승당으로 돌아가 자세히 살펴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