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4 - 선림고경총서 - 22 - 나옹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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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나옹록
11.결제에 상당하여
스님은 향을 사러 황제를 위해 축원한 뒤에 또 향을 들고 말하
였다.
“이 향은 오래 전에 얻은 것으로 이제껏 사른 일이 없었다.이
제 보암(普菴)장로를 통해 신표의 가사를 전해 왔으므로 향로에
사러서 보지 못한 이에게 보게 하고 듣지 못한 이에게 듣게 하여
삼가 서천(西天)의 108대 조사 지공(指空)대화상에게 법유(法乳)로
길러 주신 은혜를 갚으려 하는 것이다.”
그 향을 꽂고는 법좌에 올라 말씀하셨다.
“오늘은 천하 총림이 결제에 들어가는 날이오.청평산(淸平山)
비구 나옹은 이름도 없고 글자나 형상도 없으며,미오(迷悟)도 없
고 수증(修證)도 없으면서,해같이 밝고 옷칠같이 검은 이 한 물건
을 여러분의 면전에 흩어 두리라.북을 쳐서 운력이나 하거라.여
러분은 알겠는가.만일 알 수 없다면 다시 이 소식을 드러내겠다.”
주장자를 들고 “보았는가”하시고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들었는가.보고 들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여기서 당장 의심
이 없어지면,중이거나 속인이거나 남자거나 여자거나 살았거나
죽었거나 계단을 거치지 않고 저쪽으로 지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