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7 - 선림고경총서 - 26 - 총림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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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림성사 下 137
고초를 맛보았다.스님이 살던 곳은 사방이 자연 그대로의 상태였
으므로 적막함을 즐길 수 있었으며,세상의 부귀영달을 일로 여기
지 않았고 베옷과 나물밥으로 변함없는 절개를 지켜 왔다.이에
세상에서는 그를 ‘기도인’이라 불렀다.뒤에 스님은 구강(九江)원
통사(圓通寺)에 살며 차암(此菴景元:1094~1146)스님의 도를 크
게 폈다.그의 대중법문은 다음과 같다.
“원통사엔 생약가게를 열지 않고 다만 죽은 고양이 머리를 판
다.그 값이 얼마인지는 알 수 없으나 먹기만 하면 온몸에 식은땀
이 줄줄 흐르지.”
그곳에서 태평선원(太平禪院)의 은정암(隱靜庵)으로 옮겨갔는데
비록 대중은 많아도 부엌․창고 등은 쓸쓸하였으나 대중들은 아
무도 이를 불평하지 않았다.절의 소임을 맡기려 할 때는 반드시
황룡 노스님의 법을 따라 새벽 죽공양이 끝나면 바리때를 걸어
놓고 승당에서 시자에게 목탁을 치게 한 뒤 “누가 무슨 소임을 맡
아주기를 바란다”고 하면,어느 누구도 복종하지 않는 이가 없었
다.혹시라도 명을 어기는 자가 있으면 “여기 나의 회중에서 일을
맡지 않고 네가 어디 가서 일을 맡겠느냐?”라고 꾸짖었다.
아!선배들은 그 도가 높아 사람 쓰는 것이 이처럼 쉬웠는데
어찌하여 오늘날엔 수없이 빌고 절하여도 맡을 생각이 없고 오히
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니,괴롭습니다,부처님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