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6 - 선림고경총서 - 27 - 운와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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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려는 자이니 다만 그들이 도를 베푸는 바가 같지 않았을 뿐
이다.그런데 뒷사람들은 마치 쟁기로 베를 짜고 베틀의 북으로
써 밭을 갈려는 사람처럼 공연히 분분하게 미혹되고 있으니 이
것은 처음부터 그 이치를 잃고 있는 것이다.어떤 이는 ‘어떻게
하면 그러한 미혹을 없앨 수 있을까?’하는데,불교로 마음을 닦
고 도교로 몸을 닦고 유교로 세상을 다스리면 될 것이다.오직
성인만이 이 세 가지를 융화시킬 수 있기에 이를 논하지 않을
수 없다.
3.융경사(隆慶寺)한(閑)선사의 법문과 게송
한(閑)선사라는 이는 희령(熙寧:1068~1077)연간에 여릉(廬
陵)태수 장감(張鑒)의 명으로 융경사(隆慶寺)주지를 맡아 세상에
나갔다.그러나 한 달이 못 되어 왕소(王韶)가 예장(豫章)태수가
되어 서산 용천사(龍泉寺)로 초청하였는데 거기서도 1년을 넘기지
못하고 병으로 그만두었다.여릉의 승속이 배[舟]를 준비하여 그
를 융경사로 모셔오니 그곳 서당(西堂)에 거처하다가 2년이 지난
원풍(元豊)4년(1081)3월 13일에 게송으로 유언을 남겼다.
뜬세상에 형체를 드러냈다가
순식간에 꺼져 버리는 몸뚱이로
53년을 살았네
유월,칠월,팔월……
남악 천태산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