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8 - 선림고경총서 - 29 - 산암잡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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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천박한 소견으로 윗사람들의 어록을 펴내다



               중모(仲謀)스님이 온주(溫州)선암사(仙岩寺)에 주지할 무렵 천
            하는 바야흐로 태평하여 하루도 빠짐없이 선승들이 찾아왔다.나
            는 명 성원(明性元),서 영중(瑞瑩中)스님과 함께 셋이서 선암사에

            갔었다.성원과 영중은 시자로 있었고 나는 이미 장각(藏閣)소임
            을 맡은 뒤였다.때마침 보름이 되어 스님께서 법상에 올라 설법

            하였다.
               “한 번의 묵언으로 납승에게 대답하면 천둥이 우르릉대고 번갯
            불이 번쩍이고,세 번 불러 그 뜻을 깨달으면 옥이 구르고 구슬이

            돌며 칠팔십 번 해주면 정신없이 떠 받히고 부딪혀 사람을 막히
            게 한다.”
               이어 주장자를 뽑아든 채 게송을 이었다.



                 어젯밤 서풍이 베갯머리에 불었을 때
                 끝없는 매미소리 나무숲이 시끄럽구나.
                 昨夜西風枕簟秋 無限蟬聲噪高樹



               그 후 그의 어록을 편집하던 사람이 ‘애새쇄(礙塞殺)’세 글자
            를 ‘능유기(能有幾)’라고 바꿔 썼다.이는 말로 표현하는 어려움을

            모르고서 천박한 소견으로 선배들의 말을 쉽사리 고쳐 써 버린
            것으로서,수료학(水潦鶴)*으로 많은 부처님의 기어(機語)가 바뀐
                                    5)
            *수료학:비나야잡사(毘那耶雜事)에 나오는 고사.아난이 비구들과 죽림원에 갔을
              때 수료학(水潦鶴)이라는 비구가 게송을 읊고 있었다.“백세를 누리면서 수료학을
              보지 못하는 것이 하루를 살더라도 수료학을 보는 것만 못하리”라고.아난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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