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2 - 선림고경총서 - 29 - 산암잡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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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지난날 옥궤사(玉几寺)전단나무 숲 속의 경안(經案)옆
            에 앉아 있다가 우연찮게 규(珪)장주가 스님들과 함께 강론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한 스님이 ‘향상사(向上事)가 무엇이냐’고
            묻자,규장주는 두 손으로 그의 주먹을 비틀어 머리 위에 얹어놓
            은 후 합장하고 ‘소로소로……’하였습니다.나는 이를 계기로 어

            떤 기쁨을 얻었고,정신없이 몽당(蒙堂)으로 뛰어와 달(達)수좌에
            게 말하니 달수좌가 미소를 지으며 ‘너 왔느냐?’라고 하였는데,그
            뒤 가슴속이 후련한 것을 스스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내가 뒤에 규장주를 만나 그 이야기를 물어보았더니 그는 얼굴
            이 새빨갛게 붉어질 뿐 감히 대답하지 못하였다.다시 서서히 물
            어보았더니,그는 당시 그런 흉내를 낸 것은 그 스님을 놀려 주려

            고 하였을 뿐,사실 어떻게 해야 했는지 몰랐다는 것이었다.참으
            로 이 일이 말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바람이 불고 티끌

            이 일어나고 구름이 가고 새가 나는 것까지 모두가 사람을 도로
            끌어들이는 것이다.그 뒤로 얼굴을 마주치면 그는 그냥 지나쳐
            버렸다.

               지금 보면 규장주는 그 스님을 놀려 주려고 한 일이었지만 면
            시자는 여기에서 어떤 기쁨을 얻었다.생각건대 이는 부처님 생존

            시 어느 법회에서 어린 사미승이 가죽공을 가지고 장난 삼아 늙
            은 비구의 머리를 때려 사과(四果)를 깨치게 만들었던 고사와 함
            께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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