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6 - 선림고경총서 - 29 - 산암잡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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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자기를 알아준 은혜에 보답하다/서암 요혜(西岩了惠)스님
천동사(天童寺)서암(西岩了惠:1198~1262)스님은 촉 땅 사람
이다.남쪽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가 경산사에 이르러 무준(無準)스
님을 만났다.거기서 서로 선기가 투합하여 무준스님은 입실을 허
락하고 장주를 맡기려 하였으나 애써 막으려는 사람이 있었다.그
이튿날 고인이 된 눌(訥)시자의 기감(起龕:다비식 때 관을 다비장
으로 옮겨가기 위해 일으키는 행사)의식이 있었는데 대중이 모두
겁을 먹고 말 한마디도 못 하자,무준스님은 유나(維那)를 시켜 혜
(惠)시자를 기감을 주관할 사람으로 맞이해 오도록 하였다.이에
혜시자는 감(龕)앞에 이르러 연거푸 세 차례 “눌시자!”하고 불렀
지만 이때도 사람들이 겁을 내자 그는 마침내 “세 번을 불러도 대
답 없더니 과연 눌시자의 정수리에서 요천골(遼天鶻)이 나왔구나!”
하였다.무준스님은 혜시자를 밀쳐내려는 자를 당장에 쫓아내고
혜시자로 하여금 그 일을 대신하도록 하였는데 혜시자는 바로 서
암스님이다.
스님은 이에 앞서 영은사의 묘봉(妙峰)스님에게 귀의하였는데
그 당시 영은사는 동서 양 행랑 벽 위에 그려진,선재동자가 53선
지식에게 도를 묻는 벽화를 다시 단청하는 불사가 있었다.선승들
이 제각기 게송을 지어 축하했고 스님도 게송을 지었으나 그를
시기하는 자가 두루말이에 써 넣어 주지 않았는데,묘봉스님이 두
루말이를 펼쳐 보다가 물었다.
“혜시자의 게송은 어찌하여 없는가?”
“ 있기는 하나 두루말이에 수록할 만한 글이 못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