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6 - 선림고경총서 - 37 - 벽암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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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맞게 자유자재한다.대용(大用)과 대기(大機)가 없다면 어찌
이처럼 하늘과 땅을 거머쥘 줄 알겠는가?이는 경대에 걸려 있
는 밝은 거울에 오랑캐가 오면 오랑캐가 나타나고,중국인이 오
면 중국인이 나타나는 것과 같다.
이 공안은 (제39칙의)화약란(花藥欄)화두와 한가지이지만
뜻은 다르다.스님의 물음은 분명치 못하나,대룡스님의 답변은
매우 좋았다.
듣지도 못하였느냐,어느 스님이 운문스님에게 물었던 일을.
“나무가 시들하고 잎새가 떨어질 때는 어떠합니까?”
“ 가을 바람이 통째로 드러나지.”
이를 화살과 칼끝이 서로 버티는 것 같은 절묘한 솜씨라고
한다.
스님이 대룡스님에게 “색신은 부서지는데 무엇이 견고한 법
신입니까”라고 묻자,대룡스님은 “산 꽃은 비단결처럼 피어나
고,시냇물은 쪽빛처럼 맑다”고 하였다.이는 그대는 서쪽 진
(秦)나라로,나는 동쪽 노(魯)나라로 가는 것과 같다.그는 이처
럼 가지만 나는 이처럼 가지 않는다는 것이니,운문스님과는 갑
절이나 상반된다.그가 이처럼 간 것은 그래도 알기 쉽지만 이
처럼 가지 않은 것은 알기 어렵다.
대룡스님은 매우 빈틈없는 말을 하였다.설두스님의 송은 다
음과 같다.
송
물어도 결코 알 수 없고
-동서를 분별하지 못했군.물건을 가지고 놀면서도 이름도 몰랐다.모
자를 사고 나서 뒤늦게 머리 치수를 재는 꼴이군.
대답해도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