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8 - 선림고경총서 - 37 - 벽암록(하)
P. 98
98
-절반을 말했을 뿐이다.8만 4천 한량없는 영겁토록 무간지옥에 떨어
질 업(業)이나 아직 절반쯤도 안 된다.
평창
설두스님의 송에 가장 큰 솜씨[工夫]가 있었다.앞(제27칙)의
운문스님의 화두에 대한 송에서는 “물음에는 종요(宗要)가 있
고,대답 또한 같다”고 하였는데,여기에서는 그처럼 말하지 않
고 “물어도 일찍이 모르고 대답해도 모른다”고 하였다.대룡스
님의 대답을 곁에서 보니 참으로 기특하였다.과연 누가 이처럼
물을 수 있을까?묻기 이전에 벌써 잘못된 것이다.그의 대답은
상대방에 알맞게 수준을 낮추어 기연에 따라서 말한 것이었다.
“산 꽃은 비단결처럼 잘도 피어났고 시냇물은 쪽빛처럼 맑다.”
그대들은 요즈음 대룡스님의 뜻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그의 대답을 곁에서 보노라면 참으로 기특할 것이다.그러므로
설두스님은 송을 지어 사람들로 하여금 ‘달은 차갑고 바람은
드높은 것’을 알도록 하였고,또한 ‘옛 바위의 쓸쓸한 전나무’
와 만나게 하였다.
말해 보라,그의 뜻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이 때문에 나
는 앞의 착어에서 “구멍 없는 피리소리가 방음판에 부딪친다”
고 말하였다.
이 네 구절로 송은 끝마쳤으나,설두스님은 또다시 사람들이
말로 이러쿵저러쿵할까 걱정이 되어 “우습다,길에서 도인을 만
나다니,말로도 침묵으로도 대꾸하지 않았다”고 하였다.이 일
은 견문각지(見聞覺知)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며,사량분별(思
量分別)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그래서 말하기를,
또렷또렷하여 짝할 것이 없고
홀로 운행하나니 무엇을 의지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