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4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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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일반적인 번뇌망상의 설법은 탐진치를 기본으
로 하여 다양한 번뇌의 종류와 그 대치법을 설하는 방식으로 전개된
다. 그런데 성철스님은 그것이 모두 마음의 한 점에서 파생되는 것임을
밝히는 방식으로 설법을 전개한다. 현상적(事) 모양에 따라 논의를 전개
하다 보면 결국 그것에 묶이기 쉽다. 더구나 번뇌를 다스리는 일이 삶
의 부정적 측면을 지양하고 긍정적 측면을 추구해야 한다는 도덕적 작
업으로 오해될 위험성도 있다. 그래서 『선문정로』는 번뇌의 시작점이자
종결점인 3세 번뇌의 차원으로 집중하여 번뇌망상에 대한 논의를 전개
한다. 이것은 성철스님 설법의 주된 특징이기도 하다.
8만4천 번뇌를 요약하면 세 가지 미세한 번뇌와 여섯 가지 거친 번
뇌가 된다. 그렇다면 이 3세6추는 무엇인가? 불성이 본래 청정한데 번
뇌는 어디에서 왔는가? 근본무명에서 세 가지 감지하기 어려운 미세한
번뇌가 일어나고, 3세의 경계상에서 여섯 가지 뚜렷한 번뇌가 일어난
다. 3세6추는 『대승기신론』의 용어로서 그에 대한 논의는 여러 논서에
자세하다. 그런데 성철스님은 그에 대한 논의와 설명에 친절하지 않다.
그저 6추를 3세에, 3세를 마지막 한 점인 근본무명으로 귀납시킨다. 이
렇게 함으로써 그 근본무명을 바로 대면하는 활구참구의 자리만을 남
겨 두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성철스님은 두 가지 특별한 논의를 전개한다. 3세와 근
본무명을 동일시하는 것이 그 하나이고, 제7식의 언급이 불필요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는 것이 다른 하나이다. 우선 3세와 근본무명을 동일
시한 것은 3세의 시작이 무명업상이므로 이것을 최초의 불각인 근본무
명과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 보았던 듯하다. 어차피 목적은 3세가 아뢰
야식의 차원임을 밝히고 아뢰야식을 넘는 것이 견성임을 밝히는 데 있
기 때문이다. 제7식에 대한 논의가 불필요하다고 본 것 역시 문제의 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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