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7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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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심층 의식의 간섭과 왜곡을 멈추는 것은 번뇌를 끊는 일로서 불교
의 모든 수행법은 이것과 관련되어 있다. 그중 성철스님은 화두참구를
최고의 수행법으로 제시한다. 이 화두참구법은 철저성과 항일성을 생
명으로 한다. 화두는 말이 일어나기 전의 자리로 끝없이 나아가게 하는
힘이다. 어떠한 의식 차원의 관념적 이해에도 머물지 못하게 하면서 끝
없이 ‘왜? 어째서?’의 힘으로 오직 모를 뿐인 자리로 밀고 나간다. 그러
니까 화두가 있으면 의식이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 의식이 기동하지 않
으면 장애가 없고, 분별이 없으며, 밝은 알아차림만 있는 경계가 일어나
는데 이것이 부처의 차원이다. 문제는 이것이 일시적 경계인가 아니면
항구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자리인가에 있다.
이와 관련하여 성철스님은 유명한 3관三關, 즉 동정일여, 몽중일여,
오매일여(숙면일여)의 기준을 제시한다. 사람들은 성철스님의 이 기준 제
시를 두고 지위와 단계를 설정하는 모순에 빠졌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
러나 성철스님은 오매일여, 그중에서도 내외명철의 오매일여만을 인정
한다. 성철스님의 3관은 수행자들의 자기 점검용 기준으로 제시된 것이
지 도달할 단계로 제시된 것은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동정일여가 되었
다면 그것을 자랑하지 말고 몽중일여가 되는지 점검하라. 몽중일여가
되었다 하여 견성했다 자처하지 말고 숙면일여한 오매일여가 되는지 살
펴보라. 나아가 여기에서도 보살의 오매일여와 여래의 내외명철한 오매
일여가 다름을 알아 여기에도 머물지 말라. 이것이 성철스님의 3관이
제시하는 바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 3관의 조어법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원
래 일여一如라는 말은 상대적 차원에 있는 두 모양의 둘 아님을 나타내
는 말이다. 둘이 아니므로 일一이고, 다르지 않으므로 여如이다. 그러니
까 단어의 구성상 일여의 앞에는 보통 서로 다른 두 가지의 상대적 개
제3장 번뇌망상 · 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