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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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하룻밤을 지냈는데, 그게 하루가 아니고 매일매일 장좌불와로 이

             어지는기라. 그것이 그래 며칠이나 갈란가 하고 장좌불와의 자세를 잃
             지 않았제. 이놈아! 그게 얼마쯤 하다가 마는 것이 아니라 10년 가까이

             저녁마다 그 자세로 지냈다 말이다. 밤에 고개 한 번 떨구지 않고 말이
             다.”라고 하시며 얼굴에 미소가 가득 번지며 득의연해 하셨습니다. 한

             번만 그 말씀을 하신 게 아니라 열반에 드실 때까지 다섯 번은 들려주
             셨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이 말씀을 들을 때마다 큰스님의 얼굴을 나

             도 모르게 우러러보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참말로 그럴 수 있을까? 의
             사들이 들으면 무엇이라 할는지…” 하는 불경스러운 마음을 지우지 못

             하고 죄를 짓고만 살아온 세월이었습니다.
                그리고 『성철스님 평전』의 병중일여 편에서, 큰스님께서 세수로 여든

             에 급성폐렴으로 부산 동아대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고 계신 어느 날,
             병문안을 가서 침상 옆에 꿇어앉아 병상에 누워 계시는 모습을 물끄러

             미 올려다보고 있는데, 퀭한 눈빛으로 “똑같다! 똑같다!”라고 한두 마
             디만 하셔서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하니 한마디 하셨습니

             다. “이 벽창호 같은 놈아! 옛날 젊었을 때나 장좌불와할 때나, 목숨이
             오가는 지금이나 정진이 똑같다는 말이다. 그 말도 못 알아들어? 미련

             한 곰새끼 아니가?” 하시며 낙담하는 모습을 보이시니, 저는 저대로 ‘큰
             스님의 지금 이 순간의 경지’를 알아채지 못해 그저 무안하기만 할 뿐이

             었습니다.
                그리고 작년에 종단의 한 어른 스님을 만나뵈었는데, “봉암사 결사가

             한창일 때 내가 스무 살이 못 되어 향곡스님을 모시고 봉암사에서 결
             사대중과 살았는기라. 그때 성철스님은 생식과 장좌불와를 하고 계셔

             서 모든 대중의 모범이 되셨단 말이제. 내가 그때 성철스님 상좌가 됐어
             야 했는데, 참! 아쉬운기라.”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 덕분에 큰스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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