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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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남기신 기록 중에 ‘벽곡辟穀 16년, 장좌불와長坐不臥 10년’이라는 말

            씀이 실답게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강경구 교수의 제8장 「오매일여」편을 읽으면서 큰스님께

            서 일러주시던 그 말씀들을 온전히 수긍하지 못하고 지울 수 없는 의
            심을 지녔던 죄스러움을 말끔히 씻을 수 있는 문장을 만나니 얼마나

            통쾌한지 모르겠습니다. 『성유식론』의 한 문단을 설명하면서, “그중 여
            래와 자재보살에게는 멸진정만 있다. 수면과 혼절이 없기 때문이다. 수

            면과 혼절이 없음은 오매가 일여함을 말함이니, 자재보살은 제8의 무
            기무심의 가무심이고 여래는 진여의 구경무심에서 일여한 바, 진정한

            오매일여는 구경무심뿐이다. 오직 멸진정의 선정만 있을 뿐 수면과 혼
            절이 없다.”라는 구절에 화들짝 놀라며 무릎을 쳤습니다. 백련암 골방

            에서 큰스님의 ‘백일법문’ 테이프를 녹취하면서 정리했던 법문 내용이
            번갯불처럼 번뜩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큰스님은 『종경록』에 나오는 ‘무심5위無心五位’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보통의 성위聖位에서는 세 가지가 있고, 부처님과 8지 이상 보살은 오

            직 멸진정 하나만 있어서 수면과 민절이 없다고 했습니다. (중략) 겉으로
            보면 부처님과 8지보살도 전부 다 잠을 자는 것 같지만 그분들은 언제

            든지 한결같습니다. 항상 여여해서 잠을 잘 때나 잠을 자지 않고 깨어
            있을 때나 근본경계는 조금도 변동이 없습니다. 이것이 실질적인 오매

            일여입니다.”라고 설명하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큰스님은 동화사 금당에서 오도송을 읊은 뒤로 수면과

            민절이라는 악법에 빠지지 않고 한결같이 오매일여의 경지를 유지해 오
            셨던 것입니다. 큰스님은 ‘근본경계가 조금도 변동 없는’ 그 경지에 대해

            다섯 번이나 제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백일법문』을 통해 교학
            적으로도 자세히 설명하셨고, 마지막으로 사경을 헤매는 병석에서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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