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14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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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는 것이다.

               사실 반야나 화엄 등의 경전에 보이는 무생법인에 대한 규정이 틀린
            것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선문에서는 그 자세하고 체계적인 설명이

            깨달음으로 가는 길을 더디게 한다고 보는 입장을 취한다. 더구나 교가
            의 논의에 의하면 무생법인은 하품(7지), 중품(8지), 상품(9지)으로 분류

            된다. 그렇다면 도대체 진짜 무생법인은 무엇인가?
               여기에 진무생眞無生만을 인정하는 성철스님식 일도양단법이 제기되

            는 것이다. 성철스님은 수시로 진짜(眞), 혹은 큼(大) 등의 수식어를 붙
            여 그 논의를 단순화하는 어법을 구사한다. 이를 통해 상황은 단순해

            진다. 무심인가 망념인가, 깨달음인가 착각인가, 실제인가 관념인가와
            같이 둘 중의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선가의 어법이기도 하다.

            우리가 수행이나 깨달음을 설명하려는 자세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존재
            를 바꾸고자 하는 입장이라면 이러한 단순한 자세가 필요하다. 전부 아

            니면 전무인 자리에 자기의 전 존재를 내거는 것, 이것이 수행자의 자세
            이기 때문이다.






               2. 성철스님 무생법인 설법의 특징





               무생법인의 설법은 마조스님의 설법을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마조스님이 내린 가르침의 핵심은 평상심이 도(平常心是道), 이 마음이
            바로 부처(此心卽佛), 온 세계가 오직 마음일 뿐(三界唯心)이라는 말에 집

            중된다. 무수한 현상이 오직 한마음의 일이라면 그것은 또한 생멸의 모
            양으로 나타난 무생멸이라고 할 수 있다. 개별적 사건은 일어나기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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