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16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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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지혜를 직접 깨닫는 일을 가리켰다. 『능가경』에서는 선을 실천

            하는 입장에 따라 우부소행선愚夫所行禪, 관찰의선觀察義禪, 반연여선攀
            緣如禪, 여래선으로 나누었다. 이것은 수행의 단계이기도 하다. 이 경우

            여래선은 제반 단계를 이력하거나 방황하다가 도달하게 되는 궁극의 도
            달처가 된다. ‘자아의 실체 없음(우부소행선)→대상세계의 실체 없음(관찰

            의선)→실체가 없다는 깨달음조차 실체 없음(반연여선)’의 단계를 거쳐 여
            래의 지혜를 증오하는 여래선의 구경처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후 여래선은 깨달음에 대한 다양한 내용들을 담는 그릇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이 마음이 바로 청정한 부처(卽心卽佛)임을 역설하는 마조

            스님, 황벽스님의 설법에 이르러 절정에 달한다. 성철스님이 인용한 마
            조스님, 황벽스님의 제 언설이 이에 속한다. 여래선은 “마음이 이대로

            부처임을 바로 가리켜 보이나니 등각, 묘각을 단번에 뛰어넘어 결정코
                                         121
            제2념第二念에 떨어지지 않는다.” 라는 황벽스님의 설법 등이 그렇다.
               재미있는 것은 마조스님이나 황벽스님의 홍주종을 계승한 앙산스님
            이 여래선을 뛰어넘는 조사선을 제시한 것처럼 보이는 말을 했다는 점

            이다. 성철스님도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는 것처럼 향엄스님의 깨달은 경
            지를 앙산스님이 듣고 “여래선은 알았지만 조사선은 꿈에도 보지 못했

            다.”고 말한다. 이것은 수행자들에게 하나의 공안이 되어 있는 사건이
            다. 이 사건 이후 여래선은 점漸이고 조사선은 돈頓이라거니, 여래선은

            언어문자의 차원에 있고 조사선은 언어도단의 차원에 있느니 하는 다
            양한 설명들이 나오게 된다.

               그런데 『선문정로』에 인용된 바와 같이 6조스님은 “온 곳 없고, 가는
            곳 없으며, 생성도 없고 소멸도 없는 이것이 여래청정선”이라고 했다. 언




             121   퇴옹성철(2015),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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