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75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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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경우와 같다. 하녀의 옷이 오래되어 때가 묻은 것을 고운
재로 깨끗이 세탁을 해도 때는 없어지지만 때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과 같다.
[해설] 『대지도론』의 문장이다. 앞의 인용문에서 보임의 설법을 총결
한다고 해 놓고 다시 추가 인용한 문장이다. 스님의 입장을 보강해 줄
유력한 자료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추가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인
용은 무루의 깨달음을 얻어 번뇌를 끊은 뒤에도 그 번뇌의 습관이 남아
있을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오랫동안 족쇄에 묶여 있다가 마침내
풀려난 사람이 여전히 족쇄에 묶인 듯한 부자유를 느끼는 예, 하녀의
옷을 빨아도 그 때의 흔적이 남아 있는 예를 들고 있다. 그것은 그런 느
낌이 남아 있다는 것이지 실제적 구속이 아니며 실제적 때가 아니다. 마
찬가지로 깨달음 이후, 번뇌처럼 보이는 것은 실제적 번뇌가 아니라 관
성적 습관일 뿐이다. 그러므로 번뇌의 남은 기운이라 부르는 것이다.
『대지도론』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무루의 깨달음을 얻은 불제자들의
구체적 예를 들고 있다. 난타難陀는 설법을 할 때마다 무의식중에 여자
신도들에게 먼저 눈길을 주었는데 전생에 색을 탐했던 습관이 남아 있
기 때문이었다. 교범발제憍梵鉢提는 공양 이후에 되새김질을 했는데 전
생에 소였던 습관이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또 필릉가파차畢陵迦婆蹉에
게는 남을 하대하는 말버릇이 있었다. 깨달음 이후 필릉가파차는 갠지
스강을 건너야 탁발을 할 수 있는 곳에 살았는데 탁발을 나가면 강의
신을 불러 강물을 멈추게 했다. 그때마다 필릉가파차는 손가락을 튕기
면서 “종놈아! 강물을 멈추게 하라.”고 명령하고 강의 신은 깨달음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그 말을 따르곤 했다. 그런데 이것이 반복되므로 강
의 신이 부처님께 고해 바쳤다. 부처님이 이를 지적하자 필릉가파차가
제7장 보임무심 · 3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