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71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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任長養이라는 지론을 펼치는 데 불편한 점이 있다. 그래서 ‘~해야 한다
(當)’를 지워 이미 도달한 상황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성철스님이 ‘응무소
주應無所住 이생기심而生其心’의 문장에서 ‘응應’ 자를 빼고 “머무는 바 없
이 그 마음이 난다.”로 번역한 일과 유사하다. 성철스님은 만약 진정한
깨달음이라면 ‘해야 하는(應, 當)’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규봉스
님과 원오스님의 돈오점수를 다른 차원으로 해석하는 핵심도 이 ‘응應’
자나 ‘당當’ 자가 남아 있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다.
규봉의 돈오는 심중유망心中有妄이므로 그 점수漸修는 심중제망心中
除妄이요, 원오圓悟의 돈오는 심중무망心中無妄이므로 그 점수는 사
상수선事上修善이어서, 규봉의 점수漸修는 제업除業이요 원오圓悟의
점수漸修는 적선積善이니 돈오점수의 명칭은 동일하나 그 내용은
남북상반南北相反이다. 219
규봉스님의 돈오점수와 같이 수행하는 주체가 있고 제거해야 할 망
상이 남아 있다면 ‘응應’과 ‘당當’은 생략할 수 없다. 이에 비해 원오스님
의 돈오점수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불오염不汚染의 수修인 고로 기실其
實은 원수圓修”이므로 ‘당當’ 자가 떨어져 나가야 한다고 본 것이다.
⑧의 문장은 ‘점차적으로 긴 시간 동안 길러 간(漸漸長養)’이라는 말의
부연 설명이다. 긴 시간으로 20년, 30년의 세월이 제시되어 있다. 현대
어 번역으로 제시하였지만 다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0년, 30년 동안 마음에 맞는 경계나 거슬리는 경계를 만나도 뒤
로 물러서는 일이 없는 차원을 성취하면 생사의 경계에 이르러도
219 퇴옹성철(2015), p.174.
제7장 보임무심 · 3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