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73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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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완전한 무심의 자리에서 “크게 벗어나고, 크게 눈 뜨며, 크게 살아
나는 것” 220 을 돈오견성이라고 보는 성철스님의 입장에서 그것을 깨달
음이라 인정할 수 없다. 망상이 한 점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 무심은 수
준의 고하에 상관없이 여전히 망상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라 보기 때문
이다.
그래서 10지와 등각도 환자이기는 마찬가지 라는 점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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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오는 ‘내가 자성을 보았다’고 자처하는 일이기 때문에 주체(能)와 대상
(所)의 분별을 내려놓지 못한다. 성철스님에게 있어서 무심의 차원에서
더욱 간절히 화두를 드는 일은 분별적 유심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보
증수표에 해당한다. 그래서 오로지 모를 뿐인 화두일념의 한 길만을 제
시하는 것이다. 보임무심의 설법이 깨달음 이후의 자재한 실천에 초점
이 맞춰져 있기는 하지만 결국 이것은 작은 성취에 만족하는 마음을 내
려놓고 화두일념, 무심의 실천에 힘쓰라는 수행의 권면에 다름없다.
다음으로 ⑩와 같이 ‘징정澄淨’의 ‘정淨’ 자가 탈락되어 있다. 번역문이
‘소연翛然히 징정澄淨한 연후에’로 되어 있으므로 단순 탈자에 속한다.
1981년 초판본에 바로 되어 있던 것이 1993년에 가로쓰기로 바꾸면서
입력에 오류가 일어나 2015년 본까지 이어진 것이다. 복원되어야 한다.
⑪의 ‘중선衆善’에서 ‘중衆’ 자를 뺀 것은 그 앞에 ‘모든(一切)’이라는 말과
의미상 중복되기 때문이다. 간략함을 추구하여 생략한 것으로 보인다.
⑫에 ‘동체대비의 마음을 일으켜(起大悲)’를 생략한 것은 유정중생을
돕는다는 말과 의미가 중복되기 때문이다. 또한 ‘의식적으로’ 자비한 마
음을 일으킨다는 뜻으로 이해되는 길을 차단하기 위한 생략이기도 하
220 퇴옹성철(2015), p.176.
221 퇴옹성철(2015), p.176.
제7장 보임무심 · 3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