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30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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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의 관문에 가로막혀 있다(無心猶隔一重關)’는 말이 가리키는 바가 이것

            이다.
               그래서 무심을 뚫고 되돌아와 무엇에도 걸림 없이 사는 사중득활의

            설법이 시설된다. 수행자가 화두와 하나 되어 무심에 이르면 우주의 밖
            에 홀로 있는 듯, 모든 경계와 절연되는 일이 일어난다. 6근, 6진, 6식

            이 소멸하여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맛을
            모르는 상황이 된다. 숨이 끊어지지는 않았으나 죽은 사람과 같은 상태

            이므로 이것을 ‘크게 한 번 죽는다(大死一番)’고 표현한다. 이때 선지식을
            만나 활연대오하면 모든 만사만물이 곧 부처임을 알게 된다. 이것이 견

            성의 본뜻이다. 견성하면 일체의 시비분별이 떨어져 나가고, 불법의 이
            치와 승묘한 경계가 모두 떨어져 나간다. 가볍고 자유롭게 세상과 한

            몸으로 만나 노닐게 되는데, 이것이 ‘크게 되살아남(大活)’의 풍경이다.
               여기에서 번뇌가 모두 떨어져 나가고, 앞뒤가 끊어지고,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는 크게 죽는(大死)의 경계는 수행자들이 고대해 마지않는
            승묘한 경계이다. 세간적 망상이 더 이상 그를 침탈하지 못하기 때문이

            다. 이러한 상황을 옛 어록에서는 불 꺼진 재(死灰), 식은 재(寒灰), 말라
            버린 나무(枯木), 물이 끝나고 산이 다한 자리(水窮山盡處), 백 척 장대 끝

            (百尺竿頭), 파도를 가르고 물을 거슬러 올라가기(衝波逆水) 등으로 비유하
            였다.

               그런데 이 무심경계를 깨달음으로 착각하여 거기에 머무는 일이 얼
            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백 척 장대의 끝, 즉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는

            높이에 이르렀다는 자부심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 가
            지고는 견성이라 할 수 없다. 무심의 경계에 집착하는 자아가 남아 있

            기 때문이다. 요컨대 일념불생의 무심경계라 해도 아직 진여와 하나가
            되지 못한 불완전한 차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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