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31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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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자아의 완전한 해체, 진여와의 완전한 통일이 이루어졌는지

             를 점검하는 일이 필요해진다. 대혜스님, 설암스님, 고봉스님 등은 이러
             한 일념불생의 자리에 이르러서도 처절하게 참구에 임했다. 무엇보다도

             잠자는 상태에서도 그것이 여전한지를 점검하였다. 그런 뒤 자신이 아
             직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이때 크게 죽는 자리가 승묘한

             경계이기는 하지만 여기에서 다시 나아가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는다.
                성철스님이 점검 기준으로 제시한 오매일여 역시 완전한 깨달음의 길

             목에 있는 하나의 관문이다. 관문이므로 깨달음 그 자체가 아니라 뚫고
             지나가야 하는 단계이다. 이 고요한 무심에서 활발한 묘용으로 되살아

             나는 일이 있을 때 그것을 깨달음이라 부른다.
                진리와 하나 된다는 것은 죽은 재 속에 숨은 불꽃이 다시 타오르는

             격이고, 고목에 꽃이 피는 격이며, 물이 끝나고 산이 다한 자리에서 신
             천지가 열리는 격이다.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때 대천세계가

             온몸을 드러낸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것은 그림의 떡을 보는 일이 아
             니라 직접 먹는 일이며, 물결과 완전히 하나가 되어 몸을 맡기는 일(隨

             波逐浪)이기도 하다.
                이것이 죽음 속에서 되살아나는 사중득활의 풍경이다. 사중득활은

             설법자에 따라 크게 죽어 크게 살기(大死大活), 영원히 죽어 영원히 살
             기(常死常活), 완전히 죽어 완전히 살기(全死全活), 죽은 뒤 소생하기(死後更

             蘇) 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 핵심은 일념불생의 무심경계에 집착하
             지 않고 그것조차 내려놓는 진실한 공의 실천에 있다. 어떤 경계를 귀하

             게 여겨 인위적으로 그것을 유지하려 한다면 그 자체가 집착이고 유심
             이기 때문이다.

                간화선의 스승들은 원오스님이 그랬던 것처럼 크게 죽은 이 자리에
             서 더욱 진지하게 언구를 의심하도록 독려한다. 그리하여 선가의 말투




                                                            제9장 사중득활 · 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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