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32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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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빌리자면 부처님도 일찍이 도달하지 못한 부사의한 경계를 직접 체
득하게 된다. 이 자리는 말이 성립하지 않고(言語道斷), 마음의 행적조차
끊어진(心行處滅) 차원이다. 간화선의 역사를 빛나게 한 깨달음의 사건
들은 모두 이렇게 일념불생의 관문을 뚫고 통과하여 다시 되살아난 일
의 성취였다는 점에 다름이 없다.
6조스님의 법을 받은 혜명상좌가 그랬다. 혜명상좌가 선도 생각하지
않고 악도 생각하지 않는 무심의 자리에 머물러 버렸다면 결코 본래면
목을 바로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물을 마실 때 차갑고 따뜻함을
저절로 아는 일과 같다고 자신 있게 토로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혜명상
좌는 무심의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무엇이 나의 본래면목인가’를 돌이
켜 묻는 새로운 질문을 일으켰다. 그리하여 찬물을 차게 알고 따뜻한
물을 따뜻하게 아는 되살아남을 실경계로 체험하였다. 이처럼 대유령
에서 6조스님을 만난 혜명상좌는 그 가르침에 따라 일념불생의 자리에
이른 뒤, 다시 그것을 내려놓고 되살아나는 사중득활을 실제적 사건으
로 체험하였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일념불생은 새로운 차원으로 뛰어
들도록 하는 도약대에 해당한다. 의식으로 이해하는 차원에서는 이렇
게 자아를 완전히 방기하는 도약이 일어날 수 없다. 깨달음에 이를 수
없는 것이다. 이 법문이 드러내 보여주고자 하는 주제 의식이다.
2. 성철스님 사중득활 설법의 특징
사중득활의 전제 조건은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는 무심(一念不生), 앞
과 뒤의 시간적 끊어짐(前後際斷), 비추는 본체만 남는 경계(照體獨立)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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