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36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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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심自心을 장폐障蔽함을 입어서 자기의 정지견正知見이 현전하지 못
하며 신통광명神通光明이 발로發露하지 못한다.
현대어역 요즘 도를 닦는 많은 사람들은 몸과 마음이 생멸에서 벗어
나 고요하여 앞과 뒤가 끊어져 있음을 체득하고는 쉬고 또 쉬어 한
생각이 만년과 같도록 하며, [무너진 사당의 향로와 같도록 하며, 고
요하고 냉랭하게 하면서] 이것을 구경의 자리라 여긴다. 그렇지만 이
승묘한 경계에 가려 바른 앎과 바른 봄이 현장에 드러나지 못하게 하
고, 자기의 신묘하게 통하는 빛이 나타나지 못하게 한다는 점을 알지
못하고 있다.
[해설] 대혜스님이 대중을 상대로 한 설법에서 가져온 문장이다. 일
체 망상이 다 끊어진 무심의 경계라 해도 여전히 미세한 생각이 일어나
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그러므로 이것을 견성으로 착각하지 말고, 죽
음과 같은 무심에서 되살아나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중도로 돌아와야 한
다는 것이다. 성철스님은 이를 논거로 하여 오매일여의 대무심도 아직
깨달음이 아니므로 더욱 공부에 매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혜스님
이나 성철스님이나 무심경계의 매력에 빠지지 말라는 주장은 동일하다.
그런데 대혜스님은 중도로 돌아오는 길을 제시했고, 성철스님은 화두
공부에의 매진을 강조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앞과 뒤가 끊어져 있다(前後際斷)’는 것은 우리의 존
재가 연속성을 갖는 실체가 아님을 확인하는 현장에 섰다는 뜻이다.
찰나와 분초에도 머무는 일 없이 끝없이 생멸을 거듭하는 것, 그래서
연속성 없이 앞과 뒤가 끊어져 있는 것이 우리 존재의 본성이다. 혹 윤
회의 주체인 뿌드갈라(人相)를 설정하는 이들도 있지만 반야에서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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