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02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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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또한 나산스님은 암두스님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아 깨달은 선사

            였으므로 이런 질문이 일어난 것이기도 하다.
               둘 사이에 오간 대화는 진공묘유의 중도에 대한 해묵은 주제를 되풀

            이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위력은 가공하다. 본래 선종에서는 ‘그렇다
            그렇다’는 말로 하나의 이치에서 펼쳐지는 모든 현상들을 남김없이 긍

            정한다. 그래서 완전히 밝다(雙明)고 한 것이다. 또한 ‘그렇지 않고 그렇
            지 않다’는 말로 모든 것을 남김없이 부정한다. 모든 현상들이 하나의

            이치로 거두어져 들어가므로 어떤 것에도 그렇지 않다는 부정이 붙는
            것이다. 그래서 완전히 어둡다(雙暗)고 한 것이다. 이 둘이 ‘또한(亦)’이라

            는 말로 묶어져 중도를 실천하는 자리를 바로 드러내고 있다.
               성철스님은 이 인용문을 통해 대사대활, 상적상조, 명암쌍쌍의 모순

            공존적 상황이 말후구의 본질이라는 점을 보여주고자 한다. 분별을 내
            려놓은 자리이므로 그것은 실참실오에 의해서만 알 수 있는 일일 뿐이

            다. 인용문에 표시된 바와 같이 주제를 분명히 드러내고 불필요한 화젯
            거리를 없애기 위해서 생략이 가해졌다.

               우선 ①‘하루는(一日)’의 생략에는 진리에 대한 담론이 항간의 이야깃
            거리가 되어 입에 오르내리는 상황을 못마땅해하는 성철스님의 입장이

            반영되어 있다.
               ②의 구절이 생략되었다. ‘나산이 불렀다. 대사! 초경이 대답하였다.

            예!(羅山召云, 大師, 師應諾)’라고 문답이 오간 상황의 제시이다. 이 구절은
            바로 앞의 질문, 즉 ‘그렇고 그러한(恁麼恁麼)’ 도리와 ‘그렇지 않고 그렇

            지 않은(不恁麼不恁麼)’ 도리가 함께 하는 경계를 묻는 질문에 답하는 장
            면이다. 나산스님이 부르고 초경스님이 대답하였을 때 암두스님이 설하

            고자 한 진리는 이미 완전하게 드러났다. 나산스님은 이것을 다시 친절
            하게 ‘완전히 밝은 동시에 또한 완전히 어둡다(雙明亦雙暗)’는 말로 설명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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