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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식의 대원경지를 청정한 자성이라는 선종의 말로 바꾼 것에 불과
해 보이지만 이 설법은 간단명료하게 청법자를 깨달음으로 끌고 간다.
6조스님과 이런 사연이 있는 대원경지는 참선 수행자에게 깨달음의 대
명사였다. 특히 다른 세 가지 지혜가 별로 언급되지 않았던 것과 대조
적으로 대원경지는 맑고 고요하며 일체가 명료하여 여여부동한 깨달음
의 지혜를 가리키는 말로 애용되었다.
설봉스님은 “나에게 옛 거울이 하나 있는 것과 같아서 오랑캐가 오
면 오랑캐를 비추고, 중원 사람이 오면 중원 사람을 비춘다.” 283 라고 했
는데 이것이 곧 대원경지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2. 성철스님 대원경지 설법의 특징
성철스님의 대원경지 설법은 사중득활 설법의 꼬리를 물고 일어난
것이다. 크게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이 사중득활이다. 이렇게 되살아나
는 순간, 우주의 실상이 남김없이 드러난다. 이것이 대원경지이다. 그러
니까 성철스님에게 있어서 대원경지는 구경무심과 동의어이다. 그래서
성철스님은 먼저 6조스님이나 『능가경』의 설법을 인용하는 대신 위산스
님의 무심에 대한 가르침을 인용한다. 제8식의 소멸에 대해 직접 언급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철스님은 부처님의 구경원각과 선문의 돈오견성이 완전히 같은 것
283 『圓覺經夾頌集解講義』(X10, p.364b), “雪峯示衆云, 我這裏似一面古鏡相似, 胡
來胡現, 漢來漢現. 此豈不是大圓鏡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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