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12 - 정독 선문정로
P. 512
상의 앎과 깨달음을 성취하지 못할 일이 없다.] 생각의 일어남은 [곧]
주체적으로 생각하는 마음이 어지러운 일이고, 모양의 일어남은 [곧]
생각의 대상이 되는 외부경계가 힘을 발휘하는 일이며, 미세한 흐름
은 모두 먼지와 때가 된다. [이것을 모두 떨어낼 수 있다면 비로소 자
재함을 얻게 될 것이다.]
[해설] 위산스님이 앙산스님에게 대원경지의 종지를 설하는 법문이
다. 위산스님에 의하면 대원경지는 생각의 일어남, 모양의 일어남, 흐름
의 일어남을 벗어나는 순간에 일어나는 하나의 사건이다. 위산스님은
자신의 이 종지가 『능엄경』에 기초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엄밀하게 말
하자면 위산스님의 종지는 『능엄경』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 아니라 활용
한 것이다. 『능엄경』의 해당 구절에서 말하는 상상想相은 감각기관인 근
根과 대상 사물인 경境을 가리키며, 식정識情은 심·의·식을 가리킨다고
해석된다.
그런데 위산스님은 보는 주체로서의 기관(根)과 보이는 대상으로서
의 경계(境)를 뜻하는 상상想相을 둘로 나눈다. 그리고는 글자 그대로 어
지러운 생각을 상想, 이것을 뒤흔드는 대상 사물을 상相이라 설정한다.
그런 뒤 심·의·식의 식정識情 대신 제8식을 미세한 흐름(微細流注)에 배
대한다. 물론 이것은 위산스님이 직접 겨냥한 바이기도 하다. 식정에 해
당하는 심·의·식 중 사량식(意)과 요별식(識)을 앞의 ‘어지러운 생각’에
서 언급했으므로 제8식의 미세한 흐름만 남게 되기 때문이다. 제8식의
미세유주로부터의 벗어나는 단계가 설정된 이유이다. 이렇게 하여 제8
의 미세유주를 멸진해야 구경무심인 대원경지가 현전할 수 있다는 법
문이 완성된다. 성철스님은 제8식의 소멸을 강조한 위산스님의 견해를
공유하기 위해 이 문장을 인용하였다.
512 · 정독精讀 선문정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