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09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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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는 돈오원각론에 입각하여 모든 설법을 펼친다. 부처님처럼 살겠다
는 성철스님의 서원은 부처님이 성취한 바로 그 깨달음을 성취하겠다는
서원이기도 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선가의 유행어가 된 대원경지가 단순히 진여를
눈치챈 차원을 가리키는 말이어서는 안 된다. 성철스님의 입장에서 보
면 제8지 이상의 대자재보살일지라도 이 불완전한 경계에 머문다면 마
계에 떨어진 마구니에 불과하다. 어린아이의 천진한 무심일지라도 이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제8식을 투과하여 구경무심을 성취하지 않은 사
람은 생사의 언덕을 헤매는 사람일 뿐이다.
이처럼 성철스님은 근본무명을 모두 끊어낸 구경무심만이 진정한 대
원경지임을 강조한다. 그래서 대원경지의 설법을 전개하는 데 있어서
제8식의 소멸에 대한 논의를 주로 인용한다. 대원경지를 묘사하는 수
많은 매력적인 진술들까지 포기할 정도로 성철스님의 제8식에 대한 원
한은 깊다. 그 미세하여 알기 어려운 가무심의 경계에 속아 무수한 수
행자들이 궁극의 깨달음을 놓쳤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장의 인용문 중에 특히 마지막 감산스님의 설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유식에 대한 공부가 참선에 도움이 된다는
통론적 강설의 일부이다. 참선 수행의 길잡이로 유식의 공부를 제시하
였던 것이다. 감산스님은 여기에서 제8식을 타파하지 않고서 깨달음을
논할 수 없다는 원칙을 강조한다.
참선 수행의 핵심을 유식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점, 제8식이 소멸하
지 않는다면 그것을 깨달음이라 할 수 없다고 규정한 점 등에 있어서
감산스님은 성철스님과 깊이 통한다. 그래서 성철스님은 감산스님을 만
고의 표본이 될 대선지식으로 꼽았던 것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주의할 것이 있다. 성철스님이 해당 문장에 동의하
제10장 대원경지 · 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