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31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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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지도 못하고 마음의 바탕을 잡되게 오염시킨 종자들을 말끔히 떨
어내지도 못하고 도를 깨달았다고 자칭하곤 한다. 얻지 못하고서도
얻었다고 하고 깨닫지 못하고서도 깨달았다고 하는 일이 아닐 수 없
다. 두려워할 일이 아니겠는가?
[해설] 감산스님의 『팔식규구통설』 중 제8식에 대한 해설의 일부이
다. 감산스님은 제8식의 게송을 해석하면서 그것이 미혹의 차원에 갇
혀 있을 때에는 전생의 업보를 담는 능장能藏으로서, 또 전7식의 훈습
을 받아들이는 소장所藏으로서, 나아가 제7말나식이 집착하는 아애집
장我愛執藏으로서 작용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미혹 차원의
장식이 한 생각 전변하면 오묘한 성품과 공덕을 갖춘 여래장으로 전환
한다.
그 전환의 출발은 태어나면서 갖추고 나온 아집(俱生我執)을 타파함으
로써 시작된다. 이때 장식이라는 이름을 버리게 된다. 제8부동지에 진
입하기 전, 그러니까 제7지에서 이 버림이 일어난다. 그래서 사장捨藏이
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 뒤에도 비록 착한 종자이기는 하지만 유루종자
가 수시로 일어나 과보를 이끌어 낸다. 이것을 이숙식異熟識이라 하는데
금강심金剛心에 이르러 해탈도를 증득함과 동시에 힘을 잃게 된다. 이렇
게 하여 제8식이 대원경지로 전환된다. 완전히 오염을 벗어났으므로 무
구식無垢識이라 하며, 대원경지와 상응함(鏡智相應), 혹은 법신이 현현함
(法身顯現)이라고도 부른다. 유식수행의 궁극적 도달처이다.
여기에서 감산스님은 두 가지를 강조한다. 첫째는 아뢰야식 타파의
강조이다. 알아차리기 어렵고 그래서 타파하기도 어려운 것이 이숙식의
작용이다. 이 제8식을 타파하지 않으면 결국은 생사의 차원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것을 철저하게 뛰어넘었는지 스스로 살
제10장 대원경지 · 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