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09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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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있다고 보았다. 이 양극단의 폐단을 차단하는 논리가 바로 여섯 차
원 그대로 부처임을 말하는 6즉불六卽佛의 이론이다. 이것은 원리적으
로 모든 지위가 곧(卽) 부처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지만, 실제 수행의 차
원에서는 지위에 따른 번뇌의 타파와 지혜의 증득이 일어난다는 논리
이다. 천태스님은 이를 통해 원교의 원돈사상과 단계적 지위론을 모순
없이 통일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우선 그것은 단계적으로 분명하게 나뉘는 지위를 설정하고 있다. 이
치적으로 부처인 지위(理卽)에서 출발하여, 선지식과 경전을 통해 가르
침을 듣는 명자즉名字卽, 가르침에 의지하여 관조의 수행을 진행하는
관행즉觀行卽, 견사혹과 진사혹을 모두 끊어 부처와 닮게 되는 상사즉
相似卽, 근본무명을 한 조각씩 타파하며 그만큼의 진여를 증득하는 분
증즉分證卽의 지위를 거쳐 궁극적 깨달음의 지위인 구경즉究竟卽에 이른
다는 6단계의 설정이 그것이다. 천태에서는 이 6즉불의 원리를 수행에
적용하면 모든 지위 그대로 곧(卽) 부처이므로 밖에서 찾아 헤맬 일이
없고, 6단계의 분명한 지위가 있으므로 넘칠 일이 없다고 자부한다.
한편 화엄에서도 스스로 원교이자 돈교임을 자처하면서 보살 52지위
설을 제시한다. 특히 『화엄경』에서는 10신품, 10주품, 10행품, 10회향
품, 10지품과 같이 품을 나누어 지위별 논의를 진행할 정도로 지위론
의 설법에 집중한다. 이 중 10신은 범부의 지위에 속하며, 10주, 10행,
10회향은 현인의 지위(三賢)에 속한다. 가장 중요한 10지는 성인의 지위
(十聖)에 속하며, 여기에 등각과 묘각의 두 지위가 더해져 총 52지위가
된다.
이러한 화엄에서도 10주 초주가 중요하다. 견성이 일어나는 지점이
기 때문이다. 수행자는 이 지점에서 스스로 갖춘 지혜 법신에 눈을 떠
진정한 수행의 여정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발심이 일어나는 초
제14장 분파분증 · 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