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57 - 정독 선문정로
P. 757
판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다문에 대한 비판의 논거는 『능엄경』 등의
경전에서 가져오고, 지해에 대한 비판의 논거는 주로 백장스님의 어록
과 보조스님의 논서에서 가져온다.
성철스님은 여기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는 진영에서 그 비판의 근거
가 되는 대부분의 자료를 가져온다. 그것은 『선문정로』의 주된 언술 전
략에 해당한다. 경전의 결집이 다문제일 아난에게서 이루어졌다는 점
을 생각하여 바로 그 다문의 진영에서 그것을 비판할 자료를 가져온다.
또 신회, 규봉, 보조스님이 지해를 높이 평가했다는 점을 중시하여 바
로 그 지해의 진영에서 논박의 근거를 가져온다. 이를 통해 비판과 배격
의 효과를 높이고자 한 것이다.
성철스님은 다문지해를 바로 해오와 동일시한다. 다문지해는 불조의
언설에 대한 학습과 기억, 사량분별 차원의 이해를 뜻한다. 그래서 모든
선지식들은 다문지해를 경계했던 것이다. 이에 비해 해오는 다문지해를
통해서든 수행을 통해서든 간에 전에 없던 차원의 깨달음을 체험했다
는 뜻을 갖는다. 그래서 ‘깨달을 오悟’ 자를 쓴 것이다. 규봉스님 계열의
선사들이 해오를 높이 세우고자 했던 이유가 이 ‘오悟’ 자에 있었다.
그렇지만 성철스님의 입장에서는 그 말이 그 말이다. 지해나 해오나
결국은 유심의 영역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해오인 돈오를 견성
이라 생각하는 일이나 유심의 향연인 다문지해로 깨달음에 이를 수 있
다는 생각이나 서로 다를 바 없다고 보는 것이다.
경론의 학습과 독송을 수행의 가장 큰 장애로 보는 성철스님의 평소
지론은 다문지해에 대한 이러한 관점에 깊이 뿌리를 대고 있다. 경전에
제시된 불가사의한 경계와 절묘한 문구들은 우리를 매혹한다. 성철스님
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책을 보는 일’은 두 가지의 측면에서 수행에
장애가 된다. 우선 그것에 대한 이해를 깨달음으로 착각하는 일이 있을
제15장 다문지해 · 7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