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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보다 더 치유하기 어려운 고질병에 해당한다. 살생, 도둑질, 음행, 거
짓말의 네 가지 바라이죄(四重罪)나 부친을 살해하고, 모친을 살해하고,
아라한을 살해하며, 부처의 몸에 피가 나게 하고, 대중의 화합을 깨는
일 등의 다섯 가지 용서할 수 없는 죄(五逆罪)는 누가 보더라도 죄가 된
다. 그러므로 이러한 죄업에는 두려움과 참회가 뒤따른다. 이러한 참회
가 있는 한 죄업을 소멸할 가능성이 있다. “피 묻은 칼을 내려놓으면 그
자리에서 성불한다. (放下屠刀, 立地成佛.)”는 말이 성립하는 현장이다.
이에 비해 불법 비방 등을 내용으로 하는 일천제의 죄업은 신념에
기초한 것이므로 회개가 일어나기 어렵다. 이 일천제에 대한 정의는 외
도에 대한 정의와 거의 일치한다. 그런데 불교 내부의 일천제도 있다.
『능엄경』에서 말하는 큰 거짓말, 대망어가 그것이다. 대망어는 깨닫지
못했으면서 깨달았다고 말하는 일이다. 가장 큰 인연인 불성을 깨닫는
일을 두고 하는 거짓말이므로 큰 거짓말이라 한다. 그것이 착각으로 인
한 것이든 명예와 이익을 탐하여 행해진 것이든 부처의 싹을 소멸하기
는 마찬가지다.
왜 착각으로 인한 대망어가 있게 되는가? 깨달음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성문과 연각의 길에서는 자아에 대한 집착의 소멸을
궁극의 목적지로 본다. 자아 집착의 구속을 벗은 자리에서 더 나아가
려 하지 않는다. 불성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를 뿐만 아니라 그것을
부정한다. 그러므로 대승의 입장에서 보면 성문은 부처의 씨앗을 소멸
한 사람들이 된다. 명예와 이익을 탐하느라 대망어가 행해져 부처의 씨
앗을 태워 버리는 일도 있다.
수행을 통해 높은 안목을 갖추어 깨달음을 선언하고 세상의 높은 추
앙을 받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혹은 총림의 방장으로, 혹은 대선지식
으로 인정을 받아 높은 법상에 올라 사자후를 토하며 대중들을 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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