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17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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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 그리고 스스로 훌륭하다는 자부심에 빠진다. 문제는 이들이 이

             미 깨달음을 선언하고 타인의 추앙을 받는 입장이 되었으므로 다시 수
             행을 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도가 높은 본분종사의 방과 할을 수용하

             기도 어렵다. 성불로 나아갈 길이 겹겹으로 차단되는 것이다. 그래서 5
             역 중죄를 저지른 사람보다 성불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만 대승법에서는 누군가 부처의 씨앗이 소멸하는 길을 걷는다 해
             서 그것이 결코 되돌릴 수 없다고 보지는 않는다. 일천제에 대한 비판

             이 가장 많이 발견되는 『대열반경』에서도 결국 뒤에 가서는 일천제도 성
             불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한다. 모든 중생이 불성을 갖추었다는 진리는

             어떤 경우에라도 통하는 대원칙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있었다. 구마라집의 제자였던 축도생竺道生은 반야와 유

             식, 법화의 대승경전을 섭렵하여 불교의 핵심을 꿰뚫는 안목을 갖춘
             고승이었다. 당시 미완성본(小本) 『대열반경』이 번역되어 널리 유행하였

             는데 여기에 일천제가 성불하지 못한다는 설이 제시되어 있었다. 그러
             나 축도생은 여기에 이의를 제기한다. 모든 중생이 불성을 갖추고 있다

             는 대원칙에 비추어 볼 때 일천제가 결정코 성불하지 못한다는 말은 성
             립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소위 일천제 성불론을 주장한 것이다. 경전

             에 위배되는 주장을 하는 그에게 불교계의 비판이 쏟아졌음은 물론이
             다. 이에 축도생은 호구虎丘의 돌들을 모아 놓고 일천제 성불의 이치를

             설한다. 그리고 당시 설법 현장에 있던 돌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는
             전설이 전한다. 나중에 완성본(大本) 『대열반경』이 완역되었는데 축도생

             의 주장과 일치하였다.
                그러므로 부처의 씨앗을 소멸시키는 죄를 지은 일천제도 성불할 수

             있다. 다만 자기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남김 없는 참회와 회개가 선행되
             어야 함은 물론이다.




                                                            제19장 소멸불종 · 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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