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3 - 퇴옹학보 제1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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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옹성철의 중도법문이 한국불교에 미친 영향 • 173
석하면 당대 불교계가 크게 주목하지 않고 있던 중도사상을 왜 그렇게
강조했는지, 그리고 중도사상을 통해 얻고자 했던 목표는 무엇이었는지
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1. 고(苦), 대립과 갈등의 중생세간
붓다의 초전법륜은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법문이 아니었다. 사성
제는 중생이 처해 있는 고(苦)의 현실을 바로 직시하고, 그로부터 벗어나
는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 핵심이다. 퇴옹 역시 최초의 법문에서부터 이
점을 명확히 했다. 백일법문은 퇴옹에게 있어 초전법문과 같은 의미를
띤다. 물론 김용사에 머물던 시절이던 1966년 ‘운달산 법회’로 불리는
대중법문을 이미 설한 바 있다. 여기서 퇴옹은 대불련 구도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20일 간 중도법문을 설했다. 9)
김광식은 이 법회의 의의에 대해 “조실의 직함을 갖고 공개적으로 대
10)
중들을 지도하였다.” 는 점을 들어 의의가 깊다고 평가한 바 있다. 그러
나 김용사 법문은 비록 조실의 직함으로 행한 대중법문이라지만 대불
련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개별 사찰 차원의 법석이었다. 반면 해인사에
서 행한 백일법문은 해인총림 방장의 신분으로 사부대중을 대상으로
설한 종단적 차원의 법석이었다. 정화불사 이후 초대 해인총림 방장의
신분으로 설한 이 법문은 운달산 법회와는 그 성격과 위상에서 확연한
9) 원택 스님(2012), 108-109.
10) 김광식(2020), 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