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8 - 퇴옹학보 제1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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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 『퇴옹학보』 제18집




            들이 물러가고 비구가 교단의 주류로 부상하는 과정에서 극심한 갈등

            과 충돌을 빚었다.
               결론적으로 1960년대를 전후한 한국사회는 세속적으로 보나 교단

            적으로 보나 모든 구성원들이 좌우로 대립하고, 남북으로 대립하고, 친

            일과 반일로 대립하고, 비구와 대처로 대립하는 갈등의 시대였다. 그런
            갈등과 대립이 초래하는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드물었다. 따라

            서 종교지도자에게는 시대의 어둠, 중생의 고통, 교단의 아픔을 치유해

            야할 책무가 주어졌다. 퇴옹은 수행하던 시절은 물론 방장으로 있을 때
            조차 산문을 나서는 일이 없었기에 은둔의 수행자라고 할 수도 있다. 하

            지만 시대적 상황을 이해하고 중도법문의 행간을 읽으면 스님은 가장
            본질적 관점에서 시대의 요구에 응답하고 있었다. 백일법문은 당대에

            만연한 고(苦)에 대한 깊은 통찰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근원적 해법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2. 집(集), 고의 씨앗으로써 ‘양변’과 ‘희론’



               사회적 대립과 갈등이 시대를 관통하는 축으로 작용하고, 그로 인해

            중생들이 고통 받는다면 무엇이 그런 고를 초래했는지 원인에 대한 통
            찰이 필요하다. 그것이 사성제의 두 번째인 집(集)이다. 주지하다시피 붓

            다는 고에 대해 바르게 진단하고 그에 합당한 약을 처방하기 때문에 대

            의왕(大醫王)으로 불린다. 『아함경』은 붓다에 대해 “정각을 이룬 분은 대
            의왕이시니 중생에 맞는 약을 잘 투약하여 마침내 모든 고통을 제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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